오름테라퓨틱은 지난 6월 국내 비상장 바이오·헬스케어 벤처 중 가장 많은 자금을 조달했다. 회사는 최근 국내외에서 각광받는 모달리티(Modalityㆍ치료 접근법)인 타깃 단백질을 분해하는 기술인 '표적 단백질 분해제(Targeted Protein Degrader·TPD)'를 앞세워 지난달 26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9일 히트뉴스가 집계 및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오름테라퓨틱은 지난달 국내 비상장 바이오·헬스케어 투자 시장의 '톱픽(Top-pick·최선호주)'으로 꼽혔다. 오름테라퓨틱이 밝힌 이번 투자 유치는 '시리즈 B 브릿지 라운드'였다. 회사는 2021년 600억원의 대규모 투자 유치를 마무리한 뒤 2년 만에 후속 투자를 받은 것이다.
이번 브릿지 투자에는 새로운 재무적투자자(FI)와 기존 투자자들이 두루 가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크리스탈바이오사이언스, 스틱벤처스 등 신규 투자자는 물론, KB인베스트먼트, IMM인베스트먼트, 인터베스트, 스타셋인베스트먼트, 프리미어파트너스 등 기존 주주의 참여(팔로우온 투자)가 있었다. 지난 2021년과 비슷한 수준의 기업가치에서 투자자를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름테라퓨틱은 LG생명과학, 사노피 출신의 이승주 대표를 둘러싼 맨파워를 토대로 설립 후 지금까지 1300억원을 투자를 통해 마련했다. 초기 물질인 '오로맙(Oromab)' 개발 중단 이후 각고의 사업 전환을 거쳐 TPD를 전면에 내세운 결과가 투자자들에게 어필됐다는 평가다.
회사는 TPD를 항체와 결합해 기존에는 약물이 듣지 않는(Undruggableㆍ언드러거블) 단백질을 공략하는 기술로 경쟁력을 쌓고 있다. 이번 투자에 참여한 다수의 FI들은 오름테라퓨틱이 제시하는 '항암 혁신신약' 개발 비전에 동의해 200억원이 넘는 자금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름테라퓨틱이 내세우는 사업 전략은 국내외를 통틀어도 독특하다는 점이 업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앞서 언급한 하나의 노블 타깃(Novel target)인 TPD와 2개의 커먼 타깃(Common Target)인 'E3 리가아제(단백질 분해에 중심 역할을 함)' 및 항체를 결합한 항체약물잡합체(ADC)를 융합하는 게 핵심이다.
이는 테슬라가 배터리와 인공지능(AI) 기술을 융합해 굴지의 내연기관 업체들보다 전기차를 빠르게, 잘 만든 사례를 벤치마킹해 회사에 접목시키려는 오름테라퓨틱 창업주인 이승주 대표의 전략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TPD와 ADC를 융합한 플랫폼을 통해 신약 후보물질이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 질병의 원인인 돌연변이 단백질을 직접 잡아내 파괴하는 방식이다.
오름테라퓨틱은 지난달 초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HER2 발현 진행성 고형 종양 환자를 대상으로 한 HER2 표적 'GSPT1(G1 to S phase transition protein 1)' 분해제인 'ORM-5029(개발코드명)'에 대한 임상 1상 디자인을 최초로 공개한 바 있다. GSPT1은 세포 내 단백질 합성 중 번역(Translation)의 마지막 단계를 조절하는 '번역종결인자(Translation termination factor)'다.
ORM-5029는 표적 항체(HER2)에 오름테라퓨틱이 자체 개발한 TPD인 GSPT1 분해제를 결합한 ADC다. '퍼투주맙(제품명 퍼제타)'에 GSPT1 분해제를 결합한 HER2 표적 ADC다. 이 파이프라인은 세계 최초로 TPD를 ADC 형태로 항체에 결합하는 'TPD²(Dual-Precision Targeted Protein Degradation) 기술'을 적용한 유방암 치료제로, 일반 세포가 아닌 특정 표적세포 내의 GSPT1만을 분해하는데 특화된 물질이다. 단백질 분해의 효능 대비 내약성 기간을 늘리고, 약물 전달을 개선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오름테라퓨틱의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TPD와 항체의 융합을 통해 특정 표적(GSPT1)만을 효과적으로 분해하기 때문이다. 정상세포에도 있는 GSPT1을 모두 분해하면 독성 문제가 제기되지만, 오름테라퓨틱은 'TPD²'로 특정 타깃만 분해하며 효능이 최대 1000배 좋아지는 점을 입증했다.
회사는 임상 1상을 통해 환자 정맥 투여로 ORM-5029의 안전성과 내약성 및 효능을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첫 환자 투여가 시작된 임상은 '엔허투(성분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ㆍ일본 다이이찌산쿄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한 ADC 치료제)' 등 기존 HER2 표적치료제에 재발하거나 불응하는 유방암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유방암 환자 8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MD앤더슨 암센터(MD Anderson Cancer Center), 다나파버 암연구소(Dana Farber Cancer Institute) 등 6개 이상 기관에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오름테라퓨틱은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미국 항암신약 임상에 투입할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달 말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미국 임상 1상을 진행 중인 ORM-5029 등 TPD와 E3 리가아제 저해제를 ADC 형태로 항체에 결합하는 플랫폼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오름테라퓨틱에 대해 "3가지 모두를 노블 타깃으로 구성할 경우 임상에서 넘어야 할 장벽이 높고 안전성·유효성 입증에서 위험 부담이 커진다"면서도 "모든 물질이 노블하진 않지만, 효율적으로 '결합'하는 데서 회사 경쟁력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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